결혼식답례품

12·3 비상계엄 및 대통령 탄핵 심판 등 일련의 사태를 변호사들과 법조 취재기자로 구성된 집필진이 헌법과 계엄 관련 법률 등을 토대로 돌아보고 분석한다.

책은 12·3 비상계엄과 이어진 포고령 등이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드러냈으며 국민의 자유와 안전을 지키기 위해 마련된 헌법이 권력자에 의해서 얼마든지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고 진단한다.

주목할 점은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하는 단서 역시 헌법에 있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헌법 77조 1항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와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어야 한다고 비상계엄 선포의 실체적 요건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선포한 12·3 비상계엄은 이를 충족하지 못했고 이는 헌법재판소가 그를 파면하는 결정을 내린 근거 중 하나가 됐다.

누가 뭐래도 윤석열 계엄 사태에서 탄핵 시위에 앞장서고 나라를 구한 주체는 여성, 그것도 2030 위주 MZ세대 여성들이다. 집회 현장에 있던 누구라도 이를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런 이들의 공로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선행의 주체로 남길 바라는 묵시적 정치적 프레임으로 일거에 무화되었다. 나라를 구한 이들이 탄핵 정국의 집회 현장에서 낸 목소리들은 놀라울 정도로 순식간에 휘발된 느낌이다. 혀를 차며 나는 속으로 이랬다. '암만 그래 봐라. 그런다고 없어지나.'

광장에 섰던 여성 목소리, 그들의 정치적 성장담

내 속마음은 나만의 것은 아니었나 보다. 불현듯 이런 제목의 책 <백날 지워봐라, 우리가 사라지나 - 광장에 선 '딸'들의 이야기>(2025년 5월 출간)를 만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은 계엄 집회 현장 곳곳을 채우고 지킨 젊은 여성들의 활약상을 인터뷰를 통해 기록했다.

기록은 젊은 여성들을 일컬어 사회가 바라는 '대견한 딸들'이라는 식으로 미담화하지 않았다. 오히려 생생한 고난의 집회 체험기와 이를 통한 정치적 주체로서의 성장담으로 채워져 있다. 다음은 온라인 출판사 책소개 중 일부.

"청년 여성은 왜 광장에 나오는가? 이 질문에 필요한 것은 어쩌면 '답변'이 아닌 '경청'인지도 모른다. '청년 여성이 왜 광장에 나오는지'는 그들의 발화를 통할 때 비로소 온전해질 수 있다. 그들이 살아온 삶의 궤적과 경험 속에서 오롯이 이야기될 수 있다. 그리하여 이 책은 '딸'로, '2030 여성'으로, '응원봉 부대'로 호명되곤 하는 여성 시민의 광장 경험과 내밀한 삶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한다."

책에선 저마다 집회장에 나올 수밖에 없었던 각각의 고민과 불안과 답답함으로 광장에 서 있었던 심정이 녹아 있었다. 이중 내 관심을 가장 크게 끌었던 기록은 부산 서면의 '노래방 도우미'로 온라인상 회자됐던 김유진씨(가명) 인터뷰였는데, 이에 집중해 보겠다(관련 기사: "탄핵했다고 민주주의 완성 아니다" 한 노래방 도우미의 강렬한 호소 https://omn.kr/2bfp2 ).

부산 서면의 김유진이 스스로를 '노래방 도우미'라 밝히며 나선 집회 발언은 뜻밖의 반응을 일으켰다. 이 소식을 가장 먼저 접하게 된 경로는 '용주골 성매매 여성에 연대하는 시민 모임'의 SNS 커뮤니티를 통해서였다.

같은 '술집 여자' 발언인데, 사람들 반응은 왜 이리 다를까

"저기 쿠팡에서는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파주 용주골에서는 재개발의 명목으로 청년들이 삶의 터전을 파괴당하고 있습니다. 동덕여대에서는 대학민주주의가 위협을 받고 있고 서울 지하철에는 여전히 장애인의 이동할 권리가 보장되지 않으며 여성들을 향한 데이트 폭력이 성소수자를 위한 차별금지법이, 이주노동자의 아이들이 받는 차별이 그리고 전라도를 향한 지역 혐오가 이 모든 것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완벽하지 못한 것입니다." (당시 발언 중)

나는 처음에 이걸 보고 너무 놀랐는데, 그 이유는 흔히 성매매 여성으로 낙인찍히곤 하는 '노래방 도우미' 여성의 발언에, 그것도 짧게나마 집결지 폐쇄로 삶의 위기에 몰린 용주골 종사자들에 대한 그녀의 연대 발언 표명에, 그럼에도 집회 청중이 보였던 긍정적인 반응들 때문이었다.

이는 내가 살고 있는 경기 파주시, 일부 시민들이 보이는 용주골 성매매 종사자에 대한 참혹한 혐오 반응과는 극적으로 대비되었다. 섣부르게 해석하고 추정해보자면, 아마 '노래방 도우미'라는 일이 집결지 종사자보다는 좀 나은 위치로 치부됐거나, 아니면 '그렇게 갸륵한 생각을 했어?'라는 식의 낙후된 PC함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여튼 내겐 반갑지만, 더 깊은 성찰을 요하는 문제적 반응이었다.

나는 지난 2년 넘게 용주골 종사자들에게 연대해왔다. 부산 서면 집회 발언에 대한 긍정적 반응에 비해, 용주골 여성 당사자들의 발언(물론 반 계엄 반 탄핵 발언은 아니었지만)에 대한 비하와 혐오와 저주는 매우 과도했다. 왜 그렇게 과도한 걸까. 나는 연대 과정에서 아래 깔힌 혐오의 배경과 관련해 여러 이유를 느꼈는데, 거칠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일단 관이 쏟아내는 일방적인 설명·보도와 이를 비판 없이 수용하는 언론 또는 여론, 과거 미군 기지촌이었던 역사를 무조건 피해화하는 것('파주 용주골 성매매 업소 6개동 철거 완료', '파주시, 용주골 성노동자·인권활동가 고소… 공무방해 혐의 두고 법적 공방' 등이 며칠 전 나온 언론 기사 제목들이다).

. 그렇게 나머지 국가와 파주시가 사실상 '포주'였던 역사적 진실을 은폐하고 왜곡해 기지촌의 유산인 집결지를 범죄의 소굴로 이곳 종사자를 '갇힌 피해자'로 만드는 구태적 프레임. 나아가 강자 동일시가 보편화된 사회에서 약자 그것도 구조상 최약자라 할 수 있는 여성에 대한 끝도 없는 혐오, 폐쇄 정책에 끌려다니는 관계자 일반의 '악의 평범함'일 것이다.

일단, 파주시 관보와 시 친화적인 지역 신문에 파주시의 폐쇄 정책을 옹호하는 기사가 실리면 어김없이 그 more info 아래 상찬 댓글이 무수히 달리는 걸 본다. 그 댓글들 중 어느 것도 용주골이 과거 기지촌의 가슴 아픈 유산이라는 성찰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용주골 종사자들을 '쉽게 돈 벌어 사치하는 여자'쯤으로 묘사하기 일쑤였다. 혹시라도 어떤 미디어에 파주시의 일방적 폐쇄 행정에 비판적인 기사가 실리기라도 하면, 지면에 도저히 옮길 수 없는 혐오와 저주가 쏟아졌다.

한편 그 와중 "몸 파느니 차라리 쿠팡 일을 해라"라는 비아냥대는 댓글이 달린 적이 있는데, 이를 알게 된 쿠팡 노조가 성 노동 혐오에 쿠팡 노동을 이용하지 말라는, "차별과 혐오에 쿠팡물류센터 노동이 거론되는 것을 반대한다"며 입장문을 내기도 했었다.

그 주된 내용은, 쿠팡은 고강도 노동으로 사망 사건이 끊이지 않는 악명 높은 노동 현장인데, 실상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쿠팡 노동이 마치 성노동보다 고귀한 노동이라는 식의 위계를 세우지 말라는 취지였다.

헌법 89조 5호는 계엄을 선포하려면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고 정하고 있는데 12·3 비상계엄은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헌법이 정한 절차적 요건까지 위반한 것이 됐다고 헌재는 판단했다.

책은 이승만·박정희·최규하·전두환 정권 시절 선포된 비상계엄의 사례도 함께 살펴보고 민주주의를 유지하려면 헌법과 법조문만이 아니라 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권력 남용에 저항하는 시민 의식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들을 막아선 시민들과 국회의원들, 그리고 소극적인 행동으로 용감히 저항한 군인들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또 한 번 지울 수 없는 참상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중략) 시민들이 법의 취지와 작동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부당한 권력 행사를 끊임없이 감시할 때 법은 독재의 칼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방패로 거듭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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